PONY

현대자동차 성공신화의 서막, 포니

포니를 아십니까?

동네 앞 도로에 자가용 자동차가 지나가면 온 마을 사람들이 신기한 듯 눈을 들어 바라보던 시절,
아직은 거리에 자동차가 흔치 않던 시절이 불과 40여 년 전 우리의 모습입니다.

1967년 설립돼 포드의 기술이전을 받아 자동차를 조립하던 현대자동차의 꿈은 바로
우리만의 독자 모델이었습니다. 자금과 설비가 넉넉지 않았고, 기술도 부족했지만 자동차 고유모델
개발에 대한 열정과 의지만은 정말 누구보다 컸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진정한 역사는 최초의 독자 모델 포니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포니는 한국산 자동차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였으며 한국인의 자동차에 대한 추억을 남겼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첫 차’, ‘생애 최초의 내 차’ 등 즐겁고 아련한 기억 속에서 포니는 여전히 자랑스럽게 달립니다.

어느덧 도로에서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포니.
그 뿌리와 이야기를 되짚는 추억 여행을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는 1976년 데뷔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최초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로, 세계 16번째, 아시아에서
2번째 고유 자동차 모델 개발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목표로 야심차게 기획되었고, 개발을 시작한지
불과 1년 반 만인 1974년 10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토리노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실로 놀라운 추진력과
스피드였습니다.

토리노 모터쇼에서 포니에 쏟아진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한국에서 고유 모델을 출품했다는 사실부터
화젯거리였으며, 세련된 디자인 또한 눈길을 끌었습니다.
세계인의 뜨거운 관심에 자신감 얻은 현대자동차는
1975년 12월, 울산에 연산 120만 대 규모의 공장을 세우고
이듬해부터 본격 생산에 돌입했습니다.

시판 첫 해인 1976년, 포니는 1만 726대가 판매되어 당시
국내 승용차 판매의 절반에 가까운 43.5%라는 놀라운
시장점유율을 차지했습니다. 포니의 인기는 해외로도
이어져 1976년 7월, 남미 에콰도르에 다섯 대의 포니
수출을 시작으로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국이
늘어나 첫해 1019대, 1977년 4523대, 1978년 1만 2195대를
수출하며 물량 또한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이제 국내에서는 포니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예전에 수출되었던 자동차가 종종 역수입되어 우리를
아련한 추억에 젖게 합니다. 1976년 에콰도르에 택시로
수출된 포니가 20년 동안 150만㎞를 주행하고도 멀쩡한
상태로 한국에 ‘금의환향’해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영화 <화려한 휴가> 촬영을 위해 과거 이집트로
수출했던 포니 5대를 수소문해 역수입하기도 했습니다.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
조르제토 주지아로와의 만남

포니를 있게 한 디자이너는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거장 조르제토 주지아로입니다.
포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현대자동차에서는 가장 먼저
이탈리아로 담당자를 파견하였습니다. 당시 스타
디자이너로 급부상한 주지아로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디자인을 원했던 현대자동차는 당시
디자인료로는 상당한 금액인 120만 달러를 제시하며
그에게 디자인을 맡겼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주지아로는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
누치오 베르토네에게 발탁돼 유럽의 여러 명차를
탄생시켰습니다. 포니 역시 반듯한 선과 간결한 면 등
주지아로 특유의 ‘손맛’이 물씬 배어나는 뛰어난
디자인으로 이름난 유럽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상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불가능을 향한 도전

사실 현대자동차의 고유 모델 개발은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포드사의 기술을 빌려 5년 동안 자동차 조립
생산의 경험이 전부였던 현대자동차는 이전까지 부품 하나
스스로 설계해본 적 없는 초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절박했습니다. 1973년 포드와 기술이전 협상이
결렬되었고, 정부는 “엔진을 포함 국산화율 73%에 못
미치는 업체에겐 외화 사용을 금지한다”는
자동차공업육성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우리 힘으로 자동차 독자 개발에
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 부족한 자금은 차관으로 메웠으며,
디자인은 해외 전문 업체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주지아로의 ‘이탈디자인’사였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이탈디자인에 직원을 파견하였습니다. 자동차 개발의
능력은 없으나 열정은 가득했던 현대자동차 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방을 통한 학습밖에 없었습니다.

디자이너 어깨 너머로 본 설계를 백짓장에 볼펜으로 삐뚤빼뚤 그렸습니다.
이제 엔진이 필요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사를 설득해 ‘새턴’ 엔진 기술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도 직원을 파견하여 4개월 동안 연수를 하였습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직원에게
다음과 같은 특명이 떨어졌습니다. “당장 엔진을 생산하시오!”

현대자동차가 국산 고유 모델 개발을 선언한지
3년 만에 포니는 양산에 들어갔습니다.

세계 자동차 역사를 통틀어 유례없는 경우였습니다.
포니 개발의 주역들은 이렇게 당시를 회상합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물불 가리지 않고 앞만 보며 뛰던 시절이었다”고.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두둑한 배짱은
오늘날 현대자동차 그룹의 문화로 뿌리내렸습니다.

끝나지 않은 기적

포니 개발은 의지와 열정, 노력으로 이룬 ‘기적’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포니 출시 이후 꾸준히
연결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1976년 포니 픽업, 1977년엔 포니 왜건을 세상에 선보였으며 1978년에는
배기량을 높인 포니 1400도 등장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좌우로 문을 한 개씩 단 쿠페로도
출시되었습니다. 포니의 형제들이 태어나는 동안 안팎 품질도 꼼꼼히 개선했고, 편의장비도 보완했습니다.

포니를 개발한 경험은 현대자동차가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로 성장하는데 든든한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크고 작은 ‘기적’은 계속되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1986년, 자동차 산업의 본고장인 미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했고
1989년, 승용차 생산 100만 대를 돌파했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미국, 남미, 유럽까지 전세계에
공장을 건설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완성하였습니다. 2010년에는 세계 5위의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
2013년에는 글로벌 브랜드 43위로 발돋움하여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명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 같은 신화의 출발점이 바로 포니였던 것입니다.